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茶 이야기

다도의 뿌리

by 산능선 2005. 2. 3.

정동주의 茶이야기 <8> 다도(茶道)의 뿌리


현대 한국의 차살림이 가장 크게 영향받고 있는 것은 중국 ‘차회’가 아니라

일본의 ‘다도’입니다.


‘다도’라는 어휘가 마치 우리나라에서 생겨난 것처럼 보편화되어 있는

현실이 그 증거입니다.

일제로부터 해방된지 50년이 지났어도 일제의 잔재는 우리 삶과 역사 곳곳에

유령처럼 살아서 세계화를 좋아하는(?) 한국인의 의식을 갉아먹고 있습니다.


‘다도’라는 말은 식민지의 수치가 오히려 뻔뻔스런 고급 문화어처럼 변신하여

한국어 행세를 하고 있습니다.

우리 자신이 저지른 업보지요.


다도는 단순히 차 한잔 마시며 삶의 여유와 멋을 느끼게하는

취미생활 수준에서 그치는 것이 아닙니다.


이 미묘한 언어 안에는 측량키 어려운 역사, 민족심리,

자본과 미래문제까지 들어 있습니다.

그중 ‘다도’의 역사는 14~15세기 조선시대의 불교문화와 뿌리가 닿아 있지요.

줄잡아도 600여년 전에 시작된 수수께끼 같은 이 일은 한국과 일본의

천년 넘는 교류사에서 가장 특기할 문명의 전파였습니다.


임진왜란이 조선의 고급 도자기 문명을 가장 짧은 시간 안에

통째로 일본으로 옮겨가 일본화시킨 인류 최초의 문명이동이었다면,

다도의 원류가 된 조선 불교문화와 소박하고 자연성 짙은

조선 서민의 주거문화는 한 세기에 걸쳐 점진적으로 진행되어

‘초암차(草庵茶)’로 완성된 것입니다.

이는 뒷날 ‘다도’라는 종교적 성격을 가미한 일본 문화의 정수로 자리잡았지요.


이 문제는 참으로 중요하기도 하지만 한국과 일본의 차에 관한 자존심, 긍지,

그 이상의 감정까지 내재된 것입니다.

현대 한국 차살림이 지닌 성향 대부분이 일본 ‘다도’의 ‘행다법(行茶法)’

영향을 많이 받고 있음을 부인할 수 없습니다.


차실을 꾸미는 방법, 꽃을 꽂는 방식, 특히 말차(抹茶)라 불리는 가루차를 타 마시는

차완과 관련된 이른바 농차법(濃茶法)의 모든 것, 야나기 무네요시(柳宗悅)라는

일본 미학자의 차론(茶論), 차완 중에서 가장 아름답고 신비롭다는

이도차완(井戶茶碗)에 관한 연구물들, 여러 가지 방법과 기술로 만든 차 그릇들의

제작과 감상법,사용법에 이르기까지 ‘다도’의 영향은 엄청나게 크고 깊습니다.


이와같은 ‘다도’를 완성시킨 ‘초암차’의 역사는 세 명의

선구자에 의하여 이루어졌습니다.

초암차라는 말을 처음 제창하면서 일본문화의 특성인 축소지향과 은유의 미학을 위한

새로운 길을 제시한 이는 무라타 슈코(村田珠光·1422~ 1502)입니다.


중흥조의 자리를 구축한 다케노 쇼오(武野紹鷗·1502~1555)는 본래 피혁상인이었지요.

그는 국제무역항이었던 사카이(堺)지역 부유한 상인들 사이에서 한창 유행하던

조선 풍물을 응용한 새로운 주거 문화에 남다른 주의력을 집중시켰지요.


초암차를 완성함과 동시에 ‘다도’를 확립시킨 것은 센노 리큐(千利休·1522~1591)였지요.

‘다도’는 원래 부처를 섬기는 승려의 업(業)을 세속인이 모방한 것이므로

주인이나 손님이 다같이 정성을 다하고 조심스럽게 행동해야 하며,

부처의 은혜가 만인에게 평등하게 베풀어지듯이 다도는 어떤 차별도 없이

모두에게 평등해야한다는 것이 그의 다도 이념이었지요.


이같은 이념이 집대성될 수 있었던 것은 조선불교 문화와 조선 서민사회의

자연스러운 소박함이 깊은 영향을 끼쳤기 때문입니다.


일본 ‘다도’에는 현대 한국인이 상실해버린 한국의 옛 아름다움이 숨겨져 있습니다.



발췌: 천랸 다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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