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멍석위에 놓인 시

가을의 끝에 서면

by 산능선 2005. 11. 28.

사랑하고도 외로운 것은

장남


오다가다 주는 눈길들

처음부터 마다했겠습니까

년도 너머

한자리에 있었을 텐데요

바로 옆 소나무는 가지마저

터실터실 늙어 있더군요

사랑을 몰라서

외로운 것이겠습니까

차가운 천성

뜨겁게 운 적도 있었을 텐데요

가벼이 댕그랑거리는 풍경소리에는

눈길 하나 두지 않더군요

하지만, 예전처럼 이즈음이면

엉더엉

뜨겁게 소리내어 울고 싶은

내소사 동종

사랑하고도 외로운 것은

녹슨 가슴으로 우는 소리, 더는

님의 심중에 닿지 못하고

자꾸만 부스러지는 까닭이겠지요

가을의끝에 서면..

- 고 은 영 -

창경궁에서

안국동 길목까지 가을 햇살 눈 부셔

플라타너스 잎들 소스라치고

하늘로부터 떠나갔던 릴케의 가을이

다시 떨어지고 있었다.

노랗게 물든 은행잎이 포물선을 그리며

거리로 하강하는 아름다운 오후

아직 뜨거운 가슴에 기도로 채우던

수많은 시인들의 사랑은 끝나지 않았다

하늘의 높음도 빛의 색채도

암울한 내 속사람 과의 대비

공허한 삶의 모양을 뒤돌아보게 하는

현실은 서글퍼도

목멘 사랑에 화인 맞아 쏟아지는

세상의 모든 순수

나뭇잎 끝에서 반짝여 부서지는

빛의 연서로부터 별들이 뜨고

거기서 가을은 열병을 앓고

나는 죽어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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