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멍석위에 놓인 시

비 오는 날엔..

by 산능선 2005. 8. 31.


혼자 걷는 길 위에 비가 내린다

구름이 끼인 만큼 비는 내리리라

당신을 향해 젖으며 가는 나의 길을 생각한다

나도 당신을 사랑한 만큼

시를 쓰게 되리라


당신으로 인해 사랑을 얻었고

당신으로 인해 삶을 잃었으나

영원한 사랑만이

우리들의 영원한 삶을

되찾게 할 것이다


혼자 가는 길 위에 비가 내리나

나는 외롭지 않고

다만 젖어 있을 뿐이다

이렇게 먼 거리에 서 있어도

나는 당신을 가리는 우산이고 싶다

언제나 하나의 우산 속에 있고 싶다.....

- 도종환 -



씻기고 싶다


티끌 한 점 없이 영롱히

씻기고 싶다.

여름숲 속의 풀벌레 소리에

여름 숲 속의 산 새 소리에

오관의 구석구석

말끔히 씻기고 싶다.


너도 나도

과거의 미래도

절망도 소망도

세찬 빗줄기에

무서운 천둥번개에

하얗게 씻기고 싶다.


살은 커녕 뼈도 안남게

뼈는 커녕 그림자도 안남게


부서지는 포말 (泡沫) 이고 싶다.

머리 푼 바다이고 싶다.

- 김 여 정 -



비를 좋아하는 사람은


비를 좋아하는 사람은 과거가 있단다

슬프고도 아름다운 사랑의 과거가


비가 오는 거리를 혼자 걸으면서

무언가 생각할줄 모르는 사람은

사랑을 모르는 사람이란다


낙엽이 떨어져 뒹구는 거리에

한 줄의 시를 띄우지 못하는 사람은

애인이 없는 사람이란다


함박눈 내리는 밤에

혼자 앉아 있으면서도

꼭 닫힌 창문으로 눈이 가지 않는 사람은

사랑의 덫을 모르는 가엾은 사람이란다

- 조 병 화 -


빗방울 화석


창녕 우포늪에 가서 만났지

뻘 빛 번진 진회색 판에

점점점 찍혀 있는 빗방울 화석.


혹시 어느 저녁 외로운 공룡이 뻘에 퍼질러 앉아

감춘 눈물방울들이

채 굳지 않은 마음 만나면

흔적 남기지 않고 가기 어려우리.

길섶 쑥부쟁이 얼룩진 얼굴 몇 점

사라지지 않고 맴도는 가을 저녁 안개

몰래 내쉬는 인간의 숨도

삶의 육필(肉筆)로 남으리

채 굳지 않은 마음 만나면.


화석이 두근대기 시작한다.



동 규

(이미지 출처 : 웹셔핑중에서)






'멍석위에 놓인 시' 카테고리의 다른 글

바람의 말  (3) 2005.11.23
국향을 찾아서...  (4) 2005.11.15
사랑이라는 이름의 종이배  (8) 2005.08.30
찰라에..  (20) 2005.08.24
무제1  (4) 2005.08.23